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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데 콩 안난다?
등록일
2010-11-02
조회
51716

 요 며칠간 시골에 사는 후배 집에 머물며 콩 수확을 거들었습니다. 된장을 만드는 메주콩이 익은 것을 밭에서 뽑아내어 거두어들이는 일이었는데 땀 깨나 흘렸지만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이 후배가 여름내 게으름을 피웠던 모양이었습니다. 콩밭에 잡초가 난 것인지, 잡초 밭에 어쩌다 콩이 난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잡초 밭을 헤치면서 콩대를 보물찾기 하듯 돌아다니면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은 여기에는 안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콩을 심더라도 농부가 정성스레 관리하지 않으면 콩 심은데 콩이 아닌 잡초만 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되새겨보았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불기 시작했던 정보화, 그리고 코스닥 상장 열풍으로 상징되는 90년대 중반 이후의 IT 버블, 2000년대 전반의 침체기 혹은 안정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기업의 부침을 신문사 취재기자로서 생생하게 지켜보았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닷컴’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증시상장을 통해 거액을 챙길 수 있었던 ‘그 좋던’ 시절에도 모두 성공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벗들 가운데서도 일확천금을 노리며 직장 때려치우고 팔 걷고 나섰지만 쪽박 찬 경우도 보았지요. 그런 친구들은 ‘남들은 잘 나가는데 왜 나만 안되느냐’고 항변했던 일도 기억납니다.

 싫건 좋건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IT기술 진보의 이용자로 수혜자이면서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 그저 그런 서비스를, 새롭게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용해야 할 것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지 때문이지요. 
  유목에서 농경사회로의 이전하는 농업혁명,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되는 산업혁명, 그리고 뒤를 이은 것이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촉발된 정보화혁명입니다. 그런데 과연 정보화혁명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현재 모습이 정보화혁명의 어떤 단계를 보여주는 것인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선도, 악도 인간의 손과 머리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어떤 사물에 선악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도 절대불변의 것은 아닐 터이요, 카오스(혼돈) 속에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노자와 장자도 도(道)를 흙(☷) 속의 불(☲), 즉 주역의 명이괘(明夷卦)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저는 "기술의 합목적성"을 믿습니다. 즉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기술이 아니라 , 그저 없어도 좋은 도구를 세상에 새롭게 내놓아 소수의 사람들에게 금전적 이익만 몰아다 주는 기술이라면 인류를 더욱 혼란스럽게만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기술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가치중립적인 존재일 것입니다. 정보화시대,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는 새로운 서비스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이는 콩 심은데 잡초가 나는 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뭐라 해도 콩 심은 곳에는 콩이 나야합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기술 개발 담당자들과 현명한 소비자, 즉 정보이용자들일 것입니다.  

 

에브리존 고문 조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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